* 배준석 시인이 읽어주는 詩 86 - 겹쳐진 사기그릇
 
 [2010-05-27 오후 11:03:00]

 겹쳐진 사기그릇


       권 정 남




미끈거리며 겉돈다

겹쳐진 그릇이, 세제를 풀어보지만

거품이 거품을 잡고 빙빙 돌 뿐

빠지지 않는다


수천의 불구덩이에서 구워진 몸뚱어리들

하얀 자존심을 안고 서로의 가슴에

옥니로 꼭꼭 박혀 있다

손목에 힘을 주면 줄수록

꼬여 있던 세상 모든 일들이

서로 다른 생각들이

엇물린 톱니바퀴처럼

뽀드득 뽀드득 겉돌기만 하는데


서로에게 빠져 나오는 길이

이리도 깊고 단단한 걸


삶의 거품, 첨벙거리는 개수대에서

이탈을 꿈꾸며  

네 안에 있는 내가, 내안에 있는 네가

몸 하나 다치지 않고

서로에게 당당하게 걸어 나올 수 있는 

멀고 아득한 길임을

단단한 옹벽 같은, 겹쳐진 사기그릇


生의 긴 터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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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나와 똑같은 존재가 하나도 없다. 다 이질적이다. 같은 생각도

없다. 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대로 살다보면 마찰은 피할 수 없다. 그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릇을 닦다가 깨달은 느낌이 生의 긴 터널이다.  대립, 구속... 그런 말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서로를 인정하고 세운 힘을 빼면 오순도순 살아갈 일도 참 많은 것이 우리네 삶이다.

 (배준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