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의원 바이런(Byron)
 <유화웅 칼럼>
 [2021-01-14 오후 4:01:37]

유화웅 시인, 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장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라는 유명한 말로 자기 정체성을 나타낸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은 우리 나라에서도 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시절에 그의 시집이나 동시대 워즈워드(W. wordsworth), 셸리(P.B. Shelly), 키츠(J. Keats) 등 낭만주의 시인들과 함께 그들의 시를 공부해 보았던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바이런은 소아마비로 인해 신체적 열등감으로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바이런은 과격하고 충동적이었으며 이 성격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전인자의 탓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는 자살했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곤궁하게 살았는데 1798년 직계 상속자가 없는 큰 할아버지가 별세하면서 10살 어린 나이에 귀족 작위와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1807년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할 당시 바이런은 그리스어, 라틴어에 능통했고 2년여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유럽과 소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으며 헬레스폰트(Hellespont)해협을 헤엄쳐 건너는 체력을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승마, 복싱, 펜싱, 사격술에도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바이런은 외모가 빼어나 매력적이었는데 매우 육감적이고 창백한 이마는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그는 많은 여성편력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피터 퀜넬(Peter Quennel)이탈리아에서의 바이런이라는 저서에서 이름은 물론 몇 명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의 정부(情婦)들은 그렇게 왔다 사라졌다.’라고 썼고, 바이런 스스로도 토마스 무어(Thomas Moore)에게 낮에는 면학에 힘쓰는 한 편, 밤에는 방종한 생활을 영위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 반면, 바이런의 탁월한 시적 재능은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 Harald’s Pilgrimage)1, 2권의 출간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바이런은 단숨에 워즈워드, 셜리, 키츠 등 다른 낭만주의 시인들의 선두에 설 정도가 되었습니다.

바이런은 시인으로의 명성을 지닌 것과 함께 인간의 해방이라는 관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성숙해지면서 경제와 노동구조가 변화하였고 농촌에서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였던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던 일들이 기계가 대신하면서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적어지면서 노동자들은 이 모든 것이 기계의 탓이라고 기계 파괴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1811년 잉글랜드 중북부 노팅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계 파괴운동은 랭커셔, 체셔, 요크셔 등 북부지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네드 러드(Ned Ludd)였는데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기계 파괴운동을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nement)’라고 했습니다.

바이런은 당시 영국의 상원의원이었습니다. 1812년 그는 정부가 노동운동 탄압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많은 사람들을 투옥시키는 것에 항의해서 노동자들의 편에서 열변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5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전쟁해 온 그리스를 지원하기 위해 그리스 반군과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8242월 초 갑작스런 발작 증세로 고통을 겪다가 그 해 419일 그리스에서 객사를 했습니다.

시인으로 출발해서 정치인으로 그리고 유럽 평화의 한 부분을 담당하려는 세계 시민의 모습을 바이런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업적은 평론가나 역사가의 영역이겠습니다마는 바이런은 시인으로의 위치가 더욱 가치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시인 바이런은 기억하지만 상원의원, 정치가로의 바이런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글로써 이름을 날리고 예술가로 이름을 드높이던 이들이 정치권력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을 봅니다. 어쩌다 정치권력의 자리에 올랐다가 그들이 지녔던 명예와 존경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모습들을 봅니다. 문화세기에는 정치인으로의 명예는 당대에 끝나지만 문화 예술인의 명예는 시대를 넘어 인간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을 바이런에게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