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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조상이고, 시조(始祖)이다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20-09-03 오후 6:18:48  475
- File 1 : 20200903181859.jpg  (47 KB), Download : 40

 

 

 

유화웅 시인, 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장 

한 가문(家門)이 뿌리를 내려 이어져 내려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가문은 곧 성()씨에서 비롯되는데 이 성씨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져 씨족을 이루고 가문이 형성되었는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성씨의 근원은 신화, 전설에까지 그 맥이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씨는 처음부터 여러 씨족이 존재하여 각자의 성을 가지고 대를 이어져 내려오며 가문이 형성된 것이 아니고 세월을 지내오면서 성씨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고대사회에서는 특수한 귀족 계층에게만 성씨가 몇몇 있었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성씨가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때는 을지, , , , 예 등 10여 개였고 신라도 김, , , , , , , 설 등이었고 백제도 여, , , , , , 협 등이 주된 성이었다고 합니다.

이 성씨는 통일 신라가 되면서 고구려, 백제의 성씨는 거의 없어졌고, 그 후 고려가 이어가면서 중국의 성씨를 들여와 가문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성씨가 없으니 이름만 지어 불렀고, 이름도 지금처럼 고상한 의미나 항렬(行列)에 따른 작명(作名)도 할 수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부락(部落)을 중심으로 주거형태가 이루어져 있으니 동네 이름을 붙여서 역골 복돌이, 샘골 막둥이, 안골의 언년이로 누구인지 구별만 하는 정도였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성씨를 가진 사람이 양반을 제외하고는 이름만 지어 사람의 존재를 나타내었고 16세기 중·후반까지도 성씨를 가진 사람이 10% 정도였다고 합니다. 10%는 왕족을 포함한 양반 계층이었고 당시 인구 구성의 10%는 중인계급이고, 30%는 상민(常民)이고, 50%가 노비였다고 하니 성씨를 가진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평민들의 자각이 일어났고 가족과 개인의 정체성이 필요하게 되면서 성씨를 가지려는 바람과 욕구가 일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때 매관매직의 공공연한 제도인 공명첩(空名帖)이 단단히 한 몫을 했습니다. 공명(空名)의 뜻은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는 뜻이고, ()은 임명장이란 뜻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나라의 재정이 바닥나게 되자 중앙관리들이 방방곡곡 다니면서 양반이나 상민이나 가릴 것 없이 돈이나 곡식을 바치면 그 자리에서 공명첩에 이름과 벼슬을 써 주었습니다.

이 임명장에는 벼슬을 내리는 고신첩(告身帖), 노비를 양민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는 면천첩(免賤帖), 지방 관리들에게 노역(勞役)을 면제해 주는 면향첩(免鄕帖)이 있었습니다. 상민(常民)이 양반이 되고 천민이 상민(常民)이 되는 신분 상승과 더불어 성씨가 있게 되어 하루아침에 한 동네가 모두 양반이고 하루아침에 벼슬아치가 되는 일이 나타나면서 성씨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17세기 20%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19세기에 와서 70%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양반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뿌리를 둔 가문이 되어야 하니까 족보를 만들게 되었고 족보는 명문거족이나 왕손(王孫)의 것으로 만들어 소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족보는 혈통관계를 기록한 책으로 그 연원은 고려 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성씨는 1985년 인구 통계에서 275개의 성씨가 있고 그 가운데 외래 성씨가 136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 30여년이 흐른 2015년의 통계에서 한국인의 성씨가 5,582개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30년 만에 5300여개가 늘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우리나라에 귀화해서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지낸 이참 씨는 독일 이씨변호사이면서 방송인으로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진 하 일씨도 영도 하씨로 시조가 되었습니다. 다국적 귀화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각자의 성씨를 만들어 새로운 성씨의 시조(始祖)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족보를 만들어 혈통을 계승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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