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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학마을(鳴鶴洞)<249>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20-07-30 오후 7:50:13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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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안양시 안양8동 명학마을(鳴鶴洞) 지역 사진이다. 주접동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조 좌의정을 역임한 심기원(沈器遠)이 부친 심간(沈諫)의 묘를 쓰려고 수푸르지(林谷) 뒷산 땅을 파는데 돌 밑에 학() 두 마리가 나왔다.

그 중 한 마리는 오미산(烏尾山) 쪽으로 날아갔고 다른 한 마리는 이곳 바위에 날아와 슬피 울다 어디론가 날아갔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 바위를 학이 울었던 바위라 하여 명학바위(鳴鶴岩)라 칭했고, 마을이름도 바위 이름을 따 명학동이라 불렀다.

이곳에 취락이 이루어진 것은 조선시대 함평이씨와 평산신씨 등이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이후 1974년 인근에 명학역이 생기고 1976년 명학국민학교가 개교했으며 중앙병원이 들어서고 중앙로가 연장 개통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발전된 곳이다.

글 사진 : 안양시 만안구 박달2동 우성아파트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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